늦은 밤, 인적 드문 골목길을 걷다 보면 나는 종종 가로등 아래에 멈춰 선다. 밝은 원을 그리며 바닥을 비추는 조명 속에서 어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아주 미세한 그림자들을 남긴다. 그것은 벤치의 다리 아래, 맨홀 뚜껑의 테두리, 혹은 길가에 떨어진 낙엽 가장자리 같은 곳에서 숨 쉬듯 퍼져 있다.
이 작은 그림자들은 우리가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작은 존재들'의 흔적 같다. 대낮의 강한 햇빛 아래서라면 한 덩어리의 어둠으로 보일 것들이, 가로등의 부드러운 불빛 아래에선 조용히 분리되고,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이것을 단지 '시각적 잡음'이라 할지 모르지만, 나에겐 밤의 이야기를 전하는 문장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릴 때, 그림자도 춤을 춘다. 그 미묘한 움직임은 마치 무엇인가 말을 걸듯, 혹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어린 시절,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혼자 걷던 그 골목길의 냄새, 바닥의 질감, 멀리서 들려오던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가 이 그림자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보통 밝음과 어둠을 명확히 나누려 한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그런 이분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가로등 아래의 그림자처럼, 뚜렷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들, 그 애매한 틈새 속에서야말로 삶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오늘 밤, 길을 걷다 문득 가로등 아래에서 발걸음을 멈춘다면, 한 번쯤 바닥을 바라보길 바란다. 그 미세한 그림자들 속에는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감정과 기억, 그리고 조금은 낯선 고요함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